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칠리아 왕국 (문단 편집) ==== 노르만족의 남부 이탈리아와 시칠리아 정복 ==== [[파일:2000px-Italy_and_Illyria_1084_AD.svg (1).png]] 1084년 [[로베르 기스카르]]와 [[루지에로 1세]]의 활약으로 남부 이탈리아 전역과 시칠리아 대부분을 손아귀에 넣은 노르만족. [[파일:h0211.jpg]] 1058년 ~ 1090년 노르만족의 남부 이탈리아와 시칠리아 정복. 노르만인들은 남부 이탈리아에 집단 이주한 뒤 교황, 랑고바르드 귀족, 동로마 제국을 오가며 용병 활동을 하고, 영주들로부터 영지를 수여받으면서 차츰 영향력을 키웠다. 이들 중에서 [[오트빌 가문]]이 두각을 드러냈다. 오트빌 가문의 가주 탕크레드는 노르망디의 코탕탱 반도를 영지로 삼고 있었으며, 2명의 아내로부터 12명의 아들과 2명의 딸을 두었다. 자식들에게 영지를 나눠주기에는 토지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자식들은 활로를 찾고자 남이탈리아로 대거 이주했다. 장남 강철팔 기욤(William Iron arm)은 1042년 칼라브리아와 아풀리아 백작위를 확보했고, 뒤를 이은 차남 드로고(Drogo)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하인리히 3세]]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그 대가로 칼라브리아와 아풀리아 백작 작위의 정당성과 계승권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노르만족은 남부 이탈리아에 자리잡는 과정에서 현지 이탈리아인을 심하게 핍박했다. 많은 교회가 약탈당하고 많은 수도자가 살해당하고 수녀는 강간당했으며, 노르만군이 들이닥친 마을 중 무사했던 곳은 별로 없었다. 이에 현지민들은 노르만족에게 깊은 반감을 품었고, 기존에 남이탈리아를 다스렸던 랑고바르드 귀족들과 동로마 제국 역시 위협을 느꼈다. 1053년 [[교황]] [[레오 9세]]를 중심으로 뭉친 랑고바르드족-[[로트링겐 공국]]-[[스와비아]] 연합군이 노르만족을 남부 이탈리아에서 축출하기 위한 원정을 감행했다. 동로마 제국의 이탈리아 총독 [[아르이로스]] 역시 이에 호응해 군대를 일으켰다. 그러나 교황이 이끈 연합군은 [[치비타테 전투]]에서 노르만족에게 완패했고, 레오 9세는 포로 신세로 전락했다가 노르만족이 남부 이탈리아의 종주권을 갖는 것을 인정한 후에야 겨우 풀려났다. 아르이로스는 북상하던 중 교황군이 패배했다는 소식을 듣자 철수했다. 그 후 노르만족은 아풀리아 공작 [[로베르 기스카르]]의 지휘하에 본격적으로 세력 확장에 나섰다. 1057년, 로베르 기스카르는 칼라브리아의 동로마 제국령인 카리아티 시를 포위 공격해 수 개월만에 함락시켰다. 뒤이어 교황 [[니콜라오 2세]]와 밀약을 맺었다. 그가 [[신성 로마 제국]]의 압력으로부터 교황령을 지켜주는 대신, 교황은 그를 아풀리아, 칼라브리아, 시칠리아의 공작으로 봉한다는 것이었다. 아풀리아와 칼라브리아는 여전히 동로마 제국에 속했고 시칠리아는 [[시칠리아 토후국]] 수중에 있었다. 즉, 그는 교황으로부터 이 지역을 자기 것으로 삼을 권리를 인정받은 것이다. 로베르 기스카르는 동생 [[루지에로 1세]]와 함께 수십년 동안 동로마 제국과 랑고바르드 귀족들의 저항을 분쇄하며 남부 이탈리아를 지속적으로 공략한 끝에 1071년 4월 이탈리아 총독부가 있던 바리를 공략하면서 동로마 제국을 남부 이탈리아에서 완전히 축출했다. 또한 내부분열에 휘말린 시칠리아 토후국을 침략해 꾸준한 공세를 거듭한 끝에 시칠리아 마저 손아귀에 넣었다. 그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동로마 제국마저 손에 넣고자 1081년부터 1085년까지 발칸 원정을 단행했지만, 끝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병사했다. 로베르 기스카르 사후, 로베르와 시켈가이타의 아들인 루지에로 보르사가 아풀리아 공국을 상속받았다. 그러나 배다른 형인 [[보에몽 1세]]가 이에 반감을 품고 내전을 일으켰다. 루지에로 1세는 두 조카의 전쟁을 지켜보다가 1085년 9월 루지에로 보르사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그 대가로 기스카르와 공동으로 소유했던 모든 칼라브리아 성들의 소유권을 인정받았다. 이후 보에몽과 루지에로 보르사 간의 갈등을 중재해 보에몽이 루지에로 보르사의 주권을 인정하는 대신 타란토, 올리아, 오트란토 등 솔렌티나 반도를 다스리는 '타란토 공국'의 공작이 되게 했다. 이후 루지에로 1세는 여전히 남아있던 [[시칠리아 토후국]]을 마저 공격해 1090년 시칠리아 전역을 공략했다. 이리하여 노르만족은 남부 이탈리아와 시칠리아의 패자로 군림했다. 노르만 족의 정복 과정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로베르 기스카르 전쟁]]과 [[노르만의 시칠리아 정복 전쟁]] 참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